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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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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김장환 칼럼 등록일 : 2025-02-27 21:10 최종편집일 : 2025-02-27 21:13

소비환경뉴스 /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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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침탈의 발판, 강화도 조약

강력한 쇄국정책을 견지하던 흥선대원군이 1873년 집권 10년 만에 일선에서 물러나고 직접 통치를 하게 된 고종은 아버지와는 달리 외국의 물문을 받아들여 통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그러자 외국과의 통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더욱 늘어났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일본은 조선을 개항시킬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운요호라는 군함을 보내 강화도 초지진 근처에 닻을 내리고 조선의 해안을 마음대로 측량하고 총탄을 겨누는 등 강화도 앞바다를 무단으로 침탈하였다.

이에 조선군이 일본군이 돌아가도록 경고하는 대포를 쏘자 일본군은 초지진을 향해 마구 대포를 쏘아 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일본군은 영종도에 쳐들어가 주민들을 마구 죽이고 집을 불태운 뒤 달아났다.

아무 이유 없이 일본 군함의 공격을 받은 조선은 일본을 혼내 주자는 의견이 들끓었다.

하지만 일본은 도리어 조선이 일본배에 대포를 쏘아 피해를 입혔다며 사과하라면서 통상 조약을 맺을 것을 요구하였다. 일본의 요구에 조선의 많은 사람들은 통상 조약 반대를 주장했다.

유학자 최익현은 "일본과 수교하는 것은 서양과 수교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수교를 맺으면 조선은 망합니다." 라는 상소문을 올렸다.

하지만 일본과의 교류를 통해 서양의 우수한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결국 두 나라 대표는 강화도 연무대에서 조약을 맺었는데, 이것이 강화도 조약이다.

강화도 조약은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긴 했으나, 조선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내용이었으며, 연이어 ‘수호 조규 부록’과 통상 협정인 ‘조일 무역 규칙’을 강압적으로 체결하면서 조선에 대한 경제적 침탈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후 조선은 미국을 비롯한 영국, 독일, 러시아와도 조약을 맺게 되면서 중국 중심의 외교에서 탈피하나 이들 조약 모두가 조선에 불리한 불평등 내용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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