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없앤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꼭 1년 전이었다. 고장 난 텔레비전을 새로 사려 했더니 원하는 모델은 한 달 뒤에나 나온다고 했다. 기다리기로 했다.
남편은 방과 거실을 왔다 갔다 하다가 마당에 나가 서성거리더니 책을 들고 드러누웠다. 경제권을 쥐고 있는 내가 '난 텔레비전 없으니까 좋은데… 필요한 사람이 돈을 내서 사든지…' 했더니 모두 '나도 없어도 돼. 없는 게 좋은 점도 많아' 이렇게 집안 여론이 돌아갔다.
시간이 굉장히 많아졌다. 슬슬 보던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역사책·소설책·인문학책 종류를 가리지 않고 섭렵했다. 어렸을 때 읽었던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에리히 프롬, 카뮈,
셰익스피어, 제인 오스틴도 다시 읽었다. 조악한 번역에도 감동했던 책들이었지만 다시 읽으니 이 책이, 이 작가가, 이랬던가 하는 새로운 발견으로 흥분되었다.
연초에 여행에서 만난 유전자 전공 의사에게서 들은 생명의 기원과 세포의 움직임, 적자생존의 법칙 등은 아주 간단한 이야기들이었지만 줄곧 마음에 와닿았다. 평생 처음 자연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찾아보니 유전자·양자물리학·뇌과학·우주 이런 제목을 단 책들도 한편에서 유행하고 있었다.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탄생, 인간의 기원 같은 것이 왜 지금 시대에 필요하게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궁극적으로 과학과 인문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인간의 행태를 파악하고 인류의 미래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라는 새로운 지식의 지형도가 확실하게 다가왔고 공감되었다.
책만이 아니었다. 유튜브라는 신기한 채널은 환상 그 자체였다. 쇼팽을 치면 어떤 피아노곡이든 어떤 연주가의 것이든 골라 보고 들을 수 있었다. 50년 만에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도 볼 수 있었다. 요절한 첼리스트 재클린 듀프레의 <엘가의 첼로 협주곡>도 마음을 흔들었고 바렌보임과의 이중주는 환상이었다.
텔레비전을 없애고 나니 어제가 오늘 같았고 내일이 오늘 같았던 하루하루가 새로워졌다. 주는 대로 받아먹으며 '왜 이렇게 맛이 없지' 불평했던 온갖 것들에서 벗어났다. 지겨운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과목을 선택하고 이것저것 찾아 읽고 보고 가고 느끼니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자연과학책을 읽으면서 놀란 것은 자연과학에서는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면 그동안의 가설은 완전히 무너지고 새로 밝혀진 사실에 의해 모든 이론이 새로 쓰여지고 진전한다는 사실이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처음으로 내세우기까지는 모든 과학과 이론, 철학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지동설이 나오면서
천동설은 무가치해지고 그동안 천동설에 기반한 가설 아래 세워진 모든 이론은 폐기될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왜 텔레비전을 욕하면서 보았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지상파와 종편이 이끌고 있는 90% 이상의 미디어들이 쏟아내는 담론들이 꼭 천동설 시대의 이야기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종북몰이가 대표적이다. 국민들에게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는 천동설을 붙잡고 체제 불안을 내세우면서 세운 가설들로 주입식 교육을 하고 있으니 식상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방 뒤 이 땅에서 종북으로 간첩으로 긴급조치로 학살하거나 사형시키거나 고문으로 거짓 자백을 얻어냈던 사건들이 몇년 전부터 계속 무죄로 판명되고 있다. 보도연맹 사건, 인혁당 사건, 국군의 양민학살 사건, 여주 양민학살 사건,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진보당 조봉암, 와이에이치(YH) 사건, 긴급조치 위반사건 등 줄줄이 무죄로 판결이 나고 거액의 국가배상금을 내라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 종북몰이는 이미 폐기되었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교황청은 갈릴레이가 죽은 지 350년이 지나서야 그를 복원시키고 사과했다. 언제 이 짓이 끝날지….
삶도 미디어도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 시대다. 과학의 발전으로 얻은 인터넷 시대에 주입식 교육은 설 자리가 없다. 오늘 아침에도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하나 찾아냈다. 무슨 빵 이름인가 기웃했던 팟빵이라는 곳에 들어가 <시사요리쇼 밥 한번 먹자>를 보다가 웃음이 빵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