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 김경순 기자 등록일 : 2025-04-07 10:54최종편집일 : 2025-04-07 11:27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발행 신문, 독립신문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은 1883년 조선 정부에서 열흘마다 발간한 <한성순보>이다. 그러나 1884년 12월 발발한 갑신정변으로 박문국이 불타면서 발행이 중단되었다.
이후 일주일에 한 번 발간하는 <한성주보>로 제호를 고쳐 1886년 1월부터 발간을 개시하였지만 재정난으로 1888년 7월 폐간되었다.
그러다가 1896년 창간된 독립신문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민간 발행 신문이었다. 특히 서구 열강의 침략과 이권 쟁탈이 가속화되던 당시 상황과 근대 사회로의 전환에 대한 지식인의 인식을 살펴 볼 수 있는 창구였다.
그렇지만 서재필로 대변되는 서구 유학을 거친 소수 지식인 중심으로 발간된 독립신문은 당시 제국의 침략을 옹호하여 ‘서구=문명’이라는 서구중심적 색채를 띠고 있었다. 더욱이 대중을 동반자로 설정하기 보다는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는 엘리트주의적 사고와 우민관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독립신문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의는 매우 중요하다.
첫 번째는 대중에 대한 계몽이라 하겠다. 비록 대중의 위에 서서, 대중에 대한 계몽적 입장을 취했지만 대중을 향해 개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근대 사회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전달함으로써 국민 의식의 전환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두 번째로는 순한글 신문으로서 띄어쓰기, 쉬운 국어쓰기 등을 실행해 한글의 보급은 물론 한글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다. 한글의 보급은 대중의 정치참여와 의식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새로운 문화 창조의 가능성을 연 것이라 할 수 있다.
세 번째로는 대중에게 국제 사정과 정세를 알려주어 대중의 시야를 넓힘은 물론 국민으로서의 위치를 자각시켰으며, 영문판을 함께 발행해 외국에 한국의 사정을 알리는 통로로서 기능을 했다는 점이다.
네번째는 언론의 중요성을 인식시켰다. 특히 서구 열강의 침략과 이권 피탈과 같은 조선이 겪는 대외적 불이익과 탐관오리의 횡포와 정부 관리의 부패를 알림으로써 언론의 사회적 기능을 처음으로 대중에게 보여주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