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정부는 우리 삶의 어느 부분까지 개입할 수 있을까요?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었습니다. 개인의 삶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국가는 최소한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야경국가론에서부터 국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만 인간의 존엄성이 확보될 수 있다는 주장까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의 스펙트럼은 대단히 넓습니다.
스마트폰 이야기를 하고자 하면서,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한 이유는 미국의 일부 주에서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법으로 규제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뉴저지 주 포트리시에서는 걸으면서 문자를 보내다 적발되면 85달러, 유타 주는 50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벌금을 부과하는 주나 시는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좀 황당하다 싶습니다. 스마트폰을 길에서 쓴다고 벌금을 부과한다니요? 스마트폰을 언제, 어디서 쓰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인데 어디에서 쓰면 안 된다고 규제하는 것은 좀 어이없고, 웃긴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보면서 길을 걷더라도 힐금힐금 주위를 살피는데 뭐가 문제냐 싶기도 할 겁니다.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에 벌금까지…왜?여기에는 배경이 있습니다. 걸어 다니면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다가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고가 얼마나 흔한지, 미국에선 길을 걸으면서 문자를 보낸다는 뜻의 'texting while walking'이 거의 숙어로서 굳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다니엘 사이먼의 실험에서와 같이 주위를 힐금힐금 살핀다고 하더라도 주의력 결핍을 예방하기 힘들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사고는 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사이먼의 실험은 사람들이 공을 몇 번이나 서로에게 패스하는지 세어보라고 지시할 경우, 여기에만 너무 집중해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이 지나갔는지를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이 응답자의 50%에 달했다는 내용입니다.)
사고가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만 돌아간다면 이렇게 법을 만들면서까지 규제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하면 경찰과 소방대원이 출동해야하는 등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법을 통한 규제 vs 이용자제 캠페인그렇다고 하더라도 법으로 스마트폰 사용을 규제하고, 벌금을 매기는 것이 합당한가라는 질문은 오롯이 남습니다. 법으로 규제하고 있는 미국과 달리 일본은 지자체가 캠페인을 통해서 자발적인 이용 자제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일본 최대 통신업체인 NTT까지 나서 이용 자제를 위한 광고를 만들어 방영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 실태는 심각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법으로 규제하려는 미국과는 다른 선택을 한 겁니다.
스마트폰이라면 우리나라가 미국과 일본에 뒤지지 않습니다. UAE에 이어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2위인 대한민국입니다. 그만큼 스마트폰으로 인한 병폐도 더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상태입니다.
많은 경우 법을 통한 규제의 논리적 기반은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라는 독일의 법학자 옐리네크의 말과 '자유는 법률의 보호를 받아 처음으로 성립한다. 이 세상에 법외에 자유가 있을 수 없다"라는 아구스티누스의 말 가운데 어디쯤 있었을 겁니다. 법을 통해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실현하겠다는 논리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신뢰해야 하기 때문에 법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논리 그 중간 쯤 어디입니다.
법을 제정하든 캠페인을 벌이든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이 어떤지 진단하는 작업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시청자 여러분은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로 위험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 질문은 평소 걸으면서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제 자신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대답이 어떻든 간에 상주시청 사이클 선수단 참사를 계기로 운전 중 DMB 시청에 대해 규제하기 시작한 것처럼 비극이 발생한 다음에야 대책을 마련하는 안타까운 일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