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본
미국이 무력으로 일본 개항을 압박했다. 일본의 뜻은 아니었으나 힘이 없으니 어찌하랴. 사무라이의 자존심도 잠시 접어두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도쿠가와의 에도 막부의 권력에 대신하여 메이지 유신 정부가 탄생한다. 동양 문화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정도로 무력을 쌓자
일본은 서양으로부터 획득한 개항 압박을 가장 가까운 나라인 대한제국에 고스란히 적용하였다. 물론 미국이 일본에 했던 개방정책과는 사뭇 다른 행위, 즉 차원이 다른 심각한 폭력이 동반되는 침략수준이었다.
막부 시대는 저물고 메이지 유신의 새로운 정치가 등장하였다. 에도 막부 시대의 봉건사상과 메이지 유신의 신정치 체제가 펼치는 사상은 사뭇 다른 것이다. 조총이라는 무대뽀 혁신은 명예를 중요시하는 봉건 정권에게 매우 위협적이었다. 늘 그렇듯이 혁신은 과학기술이 뒷받침했고 그것은 황제, 왕 또는 귀족이라는 기득권층에게는 결코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당시 일본은 명분에 목숨 걸며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사무라이 정신사에서, 실질적인 면을 중요시하고 강력한 힘에 의한 관계를 더 가치 있게 생각하는 물질사의 세계로 바뀐 것이다. 결과는 물질의 승리였다.
역사와 사조思潮에서 정반합이라는 헤겔의 법칙이 일본에서도 매우 유효하게 들어맞았다. 헤겔은 인류가 정의하지 못한 문명의 법칙을 간단히 정의한 이론을 발견한 석학이다.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갈파한 토인비보다 한 수 위다.
어쨌거나 자민당의 시초라 할 메이지 유신 세력은 막부를 넘어뜨리고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여 자기 조상의 나라, 형제의 나라 대한제국을
일본은, 자연재해로부터 민족성의 일정 부분이 형성되었다는 가설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들은 자연으로부터 많은 것을 경험하였고, 그 망연자실과 혹독함으로부터 자신들의 정체성 일부분을 형성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역사가 증명하는 바와 같이 끊임없이 대륙으로의 진출 의지를 보였다. 어쩌면 대륙 진출 야욕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본인 생존 본능이었는지도 모른다. 잠깐, 이는 일본을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 상황이 그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러나 그들의 대륙 진출이라는 것이, 조선과 한국을 침략하는 방식으로 감행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행위로 인하여 한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
범죄다.
일본인은 독일인이 유태인에게 저지른 홀러코스터보다 더 잔인하게 한국인을 죽였다. 또 전후 세대가 이를 모른 채하고 선조들의 범죄를 감추는 것은 선조들이 범죄한 것이나 같은 행위이다. 현재의 일본인은 아직도 살아 있는 과거 피해자인 한국인에게 범한 죄를 진정으로 고백하고 사과하고 배상하여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유전적으로 99%가 같다. 그런데 이 형제의 나라가 어찌하여 오늘날 이렇게 적대적이 되었는가. 거기에는 일본의 잘못이 크다. 한국과 일본이 크게 다른 점이 있다. 한국은 끊임없이 선을 추구하는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 수천년간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살고 있는 민족이라는 점이다. 반면에 일본은 평화스럽게 지내다가도 어느 한순간에 이웃 간의 예禮를 저버린다는 것, 어느 한 순간, 자국의 이익 추구에 이성을 잃어버리고 짐승의 마음으로 변해버린다는 것, 서로 평화의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최종 순간에 악의 편에 서서 이웃을 해쳐서라도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전 국민이 나서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한일 간 역사적 증거는 수도 없이 많다. 지금까지도 극심한 피해를 입은 한국인 생존자가 있다는 점은, 양국 간 비극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러한 점에서, 2024년에 ‘일본에 의한 한국의 문명화’를 말하는 것, ‘한국인은 일본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는 취지로 한국에서 말하는 한국인이 있다는 것과, 독립 항일투쟁을 기념하는 기관의 장長을 친일 인사나 뉴라이트 인사로 임명하는 것은 매우 옳지 않다.
최근까지도 일본은 극우 정부(아베)의 결정으로 반도체 장비 수출 금지를 단행하여, 알 수 없는 경제 보복이라는 소인배의 길을 걸었다. 그것으로 일본이 얻는 이익은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어떤 승리를 가져왔는가. 이는 매우 나쁜 일일 뿐이다. 군자의 나라 한국은 느닷없이 닥친 반도체 산업의 위기를 아주 의연하게 대처하고 이겨냈다.
그런데도 2024년 지금까지도 그들 일부 정계나 일부 경제계에서 부끄러운 짓을 계속하고 있는 점이 매우 안타깝다. 야만스러운 짓을 벌이고도 일본 극우는 고개 뻣뻣하게 쳐들고 아무 뉘우침 없이 짐승의 말들을 뱉어낸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고? 조센징!”
자민당이 해체되어야 일본이 산다. 자민당은 철저하게 가부장적 보수주의자, 국수주의자, 우익대중주의자 그리고 초보수주의자들이 뭉친 정치 집합체이다. 어떻게 민주정체의 국가에서 일당이 70여년간 장기집권할 수 있는가! 일본 정치권은 자민당이 집권하는 지난 기간 중에 특유의 정치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모략, 협잡, 모사, 비리, 부정부패 등.
일본 문명의 클라이맥스 중 하나는 종종 ‘아름다운 죽음’으로 미화되는 죽음의 문화이다. ‘목숨 걸고 일하고 죽음은 가볍게!’라는 슬로건은 일본인의 가치관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들은 평소에 팔팔하게 살아 있던 사람이 자연 재해로 인하여 갑자기 시체가 되어 버리는 일을 수많이 목격했다. 죽음과 친해질 수밖에 없는 자연적 배경과 간단한 죽음의 경험을 가진 민족이다. 이러한 생명 경시는 다른 모든 악한 것을 덜 악하게 여기는 가치관을 형성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치권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악랄한 협잡질과 부패, 이웃 나라에 대한 혐오가 용인되는가 보다.
일본 사람들은 눈부시게 만개한 벚꽃을 보면서도 죽음을 생각한다. 일본 고유의 짧은 시, 하이쿠[俳句]의 한 구절이 일본인의 심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쿠라가 만발할 때 술 한 잔 들고 사쿠라가 질 때 함께 죽노라.”
사무라이의 명예는 확고 투철하다. ‘배를 주릴망정 명예에 죽고 사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는 사무라이 문화, 칼의 문화는 오늘날까지도 일본인의 마음에 여러 가지로 변용되어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뉴스 미디어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본다. 예를 들어 재벌가가 큰 부정을 저지르거나 대재난 발생 시에 회사 간부나 고위 공무원의 잘못이 드러날 때에는 어김없이 간부나 중간 공직자 한 명이 모든 책임을 지고 죽음을 택한다.
일본인만의 특징은 부끄러움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는 극한의 정서에 있다. 무사가 명예스럽게 사는 길은 ‘수치를 당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면 차라리 스스로 배를 가르는 ‘하라키리〔腹’切り〕를 택했다.
한일 관계의 회복은 이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에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1935~2023) 같은 일본 역사상 최고의 영웅이 있기에 일본인의 희망과 애정과 우호와 선린을 믿는다.
“일본, 한국에게 미안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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